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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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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상현
구분 추천여행기
제목 호국보훈의 달에 찾은 유관순열사사적지

천안8경 중에 제2경인 유관순열사사적지는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해발 170m의 야트막한 매봉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유관순열사의 생가와 매봉교회, 유관순서원, 그리고 북서쪽에 건립되어 있는 기념관과 서쪽 산자락의 추모각과 초혼묘, 봉화대, 기념관 앞쪽에 조성되어 있는 열사의 거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관순열사기념관>

유관순 열사의 유적지에 도착해서 드넓은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를 한 후 유적지로 올라서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광장 왼쪽에 기념관이 있습니다. 참고로 유적지 관람은 모두 무료입니다.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길이 추모하고 3.1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숙연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독립만세운동 애니메이션>

기념관은 입구와 출구가 다르기 때문에 바닥에 표시된 동선을 따라가기만 하면 관람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독립만세운동 내용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큰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사의 옥중 투쟁>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유관순열사는 휴교령으로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1919.4.1(음력 3.1)에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 공주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198월에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된 뒤 일제의 악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2092819세의 어린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곳은 당시에 열사가 입었던 수인복을 재현해 놓았고, 옥중 투쟁 내용을 상세히 정리해 놓은 공간입니다.

 


<유관순 열사 동상>

유관순열사의 생애를 돌아보는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면 광장 맞은편에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열사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동상 앞에서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다시는 그와 같은 외세의 치욕을 받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추모각 오르는 길


<추모각>

짧지만 조금은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병천면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매봉산 자락에 추모각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추모각 안에는 열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영정 앞의 향로에는 참배객들이 피워놓은 향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마치 열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천년만년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주듯이...

 


<초혼묘>

추모각에서 매봉산의 서북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열사의 초혼묘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혼묘란 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불러와 모신 묘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열사의 유골이 없다는 뜻이지요.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갖은 고문으로 인해 1920928일 순국하였습니다. 옥사 후 일제는 유관순 열사의 유골을 돌려주지 않다가 이화학당의 항의로 겨우 열사의 유골을 돌려받아 이태원 공동묘지에 모셨으나 이곳이 일제의 군용 기지로 쓰이면서 흔적도 없이 묘지와 유골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19891012일 유관순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초혼묘를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열사의 거리>

독립만세운동을 후손에게 기리기 위하여 다양한 상징 조형물과 함께 어우러진 휴식공간으로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나라 사랑의 정신과 순국선열의 소쉬한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한 거리입니다. 조형물은 새천년의 꿈(임정혁), 새천년의 상(김근배), 태극(윤성길), 희망의 물결(현남주) 등입니다.

 


<유관순 생가>

아주 작은 집을 비유하는 말에 초가삼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바로 초가삼간이라 할 정도로 작고 아담하였고, 낮은 담장 사이로 사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방문객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듯했습니다. 초가는 대청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서 열사와 가족, 동지들이 아우내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상황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초가 앞에 서면 어디에선가 앳된 모습의 열사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시간이 1919년으로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매봉 교회>

유관순이 애국소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매봉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관순은 어렸을 때부터 매봉교회를 다녔고,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운동도 매봉교회의 지도자들과 열사가 함께 주도하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일제의 모진 핍박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1967년 이화학당의 도움으로 매봉교회가 재건립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교회 전시실>

매봉교회의 지하 1층에는 유관순열사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는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의 지도자였던 교회대표 유중무, 조인원과 유관순 열사에 관한 기록이 걸려 있고,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면 유관순 열사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 소개,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재판 기록 등이 상세히 정리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유관순 생가길>

유관순 생가 길의 거리는 짧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벽면에는 만세를 부르는 유관순의 모습을 귀여운 캐릭터로 형상화시켜 놓았습니다. 거리가 짧아 아쉽기도 했지만 유관순서원이라고 쓰인 벽에 게시되어 있는 유관순 관련 내용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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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