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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Desk |
“우리 천안시 목천읍에는 따뜻한 효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어떤거죠?” |
목천읍의 효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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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김씨 김의연 부부 이야기인데요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언양 김씨 김의연 부부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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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 어릴때부터 성품이 바르고 지극한 효자로 알려진 언양 김씨 |
때는 조선시대 / 성품이 바르고 효자로 알려진 김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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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연이 있었답니다. 가난한 환경 가운데 노부모를 모시던 중 아버지가 병들어 |
가난한 집안 환경 /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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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독해 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했지만 끝내 돌아가시게 되고 |
피를 마시게 했지만 돌아가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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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답니다. 그러던중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
어머니 마저 병들어 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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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삼일을 더 연명케 하였지만 돌아가시게 |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해 삼일 연명 / 하지만 돌아가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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됩니다. 이에 김의연과 부인 이씨는 슬퍼하며 음식을 먹지 않다가 노모가 돌아가신지 |
어머니 돌아가시고 16일만에 부인 이씨 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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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만에 부인이 먼저 죽고 남편 김의연은 6일후 잘랐던 손가락마저 덧나 죽게됩니다 |
6일후 잘랐던 두 손가락 덧나 남편 김의연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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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선 순조 22년 1822년에 정문과 함께 하마비가 하사되어 목천군 읍내면 |
조선 순조 22년 1822년 정문과 함께 하마비 하사
화재로 전소되고 1968년 목천읍 덕전리에 다시 세워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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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리에 세워졌으나 화재로 전소되고 1968년 현재 위치인 목천읍 덕전리에 후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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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 다시 세워졌습니다. 정려 정면에는 언양 김씨 효열 정면이라 쓴 현판이 걸려 |
김의연 부부 정려 (천안시 향토유적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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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내부 중앙에는 “효자 통덕랑 조봉대부 언양 김의연 지려 열녀 영인 고성 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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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라고 각자되어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
#05. Desk |
“이런 따듯한 효 이야기가 우리 목천읍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네요” |
뿌듯...뿌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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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손가락까지는 아니어도 지금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통 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
부모님께 안부전화 한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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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따가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해야겠어요. 우리 목천읍에 가볼만한 곳들이 많다 |
목천읍 가볼만한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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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데 어디가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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